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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 입장에서 생각한, 지금이 원유 매수 시점이 아닌 이유

저도 최근에 원유를 좀 매수했는데, 블라인드 앱의 재테크 게시판에 좋은 글이 올라와서 저장해둡니다.

 

 

 

"OPEC이 놀라운 감산을 이뤄낸다"와 같은 이벤트에 베팅하는 것은 투기입니다. 투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수급상황보다는 이벤트에 의존하는 '테마주' 투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투기를 지양하시는 분들에게 지금이 원유 투자에 적합한 시점은 아니라는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중국, 인도 등에 나가있는 한국기업의 전기, 전자, 자동차 공장들이 가동을 정지한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어떤 공장은 적자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공장가동을 중단한다고 합니다.

 

정유사는 가동을 중지하는 다른 공장들이 참 부럽습니다. 정유사는 아무리 손해가 나는 상황이어도 정유공장 가동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공장을 중지하는 순간 파이프안에 있는 원유 및 석유제품들이 굳어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굳어버린 것을 녹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이 과정 이후에도 공장이 이전처럼 정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장하지 못합니다. 공장은 안전이 최우선이므로 이에 대한 고려도 해야합니다.

 

그래서 정유사는 약 3~5년에 한번씩 공장 전체를 끄고 정기보수를 진행합니다. 아싸리 설비 전체를 꺼버리고, 모든 잔여물을 개워낸 후 정비하여 새롭게 가동합니다. 그 비용은 막대합니다. 이것이 현재 정유사가 마진이 (-)여도 공장을 끄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 말은 즉슨, 현재 팔리지 않고 있는 석유제품들이 탱크에 재고로 차곡차곡 쌓여나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공장가동을 멈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꾸역꾸역 생산한 석유제품은, 손해를 보고 판다고해도 판매되지도 않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매우 기초적인 내용을 설명하자면, 원유와 석유제품을 구분해야 합니다. 원유를 가공해 석유제품(납사, 등유, 항공유 등)을 생산합니다. 일반적으로 석유제품의 수요가 감소하여 석유제품의 재고가 증가하면 원유수요가 하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원유 선물 가격이 폭락하고 사우디가 4월 선적 원유의 가격을 대폭 인하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수많은 정유사들이 원유 쟁여두기에 나섰습니다. 가(假)수요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 정유사들은 원유를 자기 원유탱크에 저장하는 것만으로 부족해, 값싼 배를 빌려 바다에 둥둥 띄워두고 하나의 저장 창고로서 활용할 심산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재기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실제 원유수요가 크게 하락하지는 않았고, 현재 WTI가격은 24불 수준을 유지하면서 셰일의 BEP(손익분기점)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셰일 BEP에 대한 내용은 "미국 셰일 생산단가 BEP를 통한 유가전망(장문주의)"라는 글을 써두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문제는 4월부터 시작입니다. OPEC 및 러시아는 OPEC+ 합의가 종료되는 4월부터 폭발적으로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4월에 선적된 원유들은 4월말 ~ 5월이 되면 정유공장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석유제품이 이미 모두 탱크에 차있는 상태이며 공장을 돌릴 여력이 더이상 없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소화하지 못할 원유에 대한 구매를 줄이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4월말 이후의 원유 수요는 현재보다 더 큰 수준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기존의 석유제품 재고가 줄어들기 위해서는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어 사람들이 기존의 생활 수준으로 회복할 수준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7~8월은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등도 매우 거셀 것입니다. 석유제품 재고가 꽉 들어찬 정유사들은 어쩔 수 없이 다함께 공장 가동량을 크게 줄여야 하는 시점이 올 것입니다. 이 시점을 계기로 석유제품 재고가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며, 제품재고 감소 → 제품가격 증가 → 원유 수요 증가 → 원유 가격 증가가 시작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원유 매수시점은 5월 이후, 정유사들이 가동을 크게 줄인다거나 해외의 소∙중형 정유사들이 가동을 완전 중단하는 등의 뉴스가 보일 때부터입니다.

 

이 내용은 서프라이징한 감산 등의 뉴스를 배제한 설명임을 다시한번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위 내용을 다시한번 정리하자면,
→ (2-3월) 코로나로 석유제품 수요 폭락
→ (3월) 공급발 위기로 유가 폭락
→ (3월) 저렴한 원유가격으로 인해 4월말~5월에 사용할 원유에 대한 사재기 수요 폭증
→ (4-5월) 그 원유가 도착하면, 더 이상 원유를 가공해 만든 제품을 저장할 공간이 없음
→ (4-5월) 정유사들의 사재기 수요 급감
→ (4-5월)사재기 수요가 빠지게 되면서 원유가격 재차하락
→ (5-6월) 공장가동률 감소로 석유제품 재고 감소 시작
→ (7월) 석유제품 가격 상승
→ (7월-8월) 원유수요 및 가격 빠르게 증가

 

장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투하시길

-이상 WTI 48불에 물렸던 바 있는 주린이.